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4 FIFA 월드컵 미국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IK-0h4k-ogk, width=400)] ---- [[1994년]] [[미국]]에서 개최된 15번째 [[FIFA 월드컵]]으로 마지막 24강 체제 대회였다. 당시에는 [[축구]]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미국]]에서 개최되었다.[* 지금은 [[메이저 리그 사커|MLS]]와 [[프리미어 리그]] 중계, 그리고 유럽 명문 클럽의 투어와 세계 최강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활약과 함께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월드컵 본선에 자주 진출하는 단골손님인지라 축구 그자체의 인지도가 꽤 있지만, 이 당시만 해도 미국 내에서의 축구의 인지도가 매우 낮았다.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를 '''[[마돈나]]'''로 알았을 정도였다.]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1970 멕시코 월드컵]]과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1986 멕시코 월드컵]] 이후로 8년 만에 북중미에서 개최한 월드컵이다. [* [[멕시코]]가 두 번 월드컵을 개최하였으나, 대부분 [[라틴아메리카]]로 묶이기 때문에 유럽과 남미가 아닌 제3대륙에서 개최한 최초의 월드컵으로 미국 월드컵을 꼽는다.] 미국인들은 4대 프로스포츠인 [[미식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에나 관심이 많고, 축구에는 무관심해서[* 심지어 몇몇 야구, 풋볼선수 출신의 정치인, 국회의원들이 월드컵 개최를 반대하기도 했다. 미국은 운동선수 출신 정치인이 많다.] 미국 내 언론에서도 일단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라고 홍보를 많이 해줬고, 결정적으로 '''월드컵 기간이 미식축구 시즌과 겹치지 않았다'''. 프로미식축구 리그인 [[NFL]]은 늦여름인 8월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초[[가을]]인 9월에 시즌을 시작해 다음 해 1~2월에 끝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스포츠 자본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다 보니 딱히 큰 돈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세계에서 첫 프로 스포츠 개념을 세운 나라답게 이와 관련된 법령이라든지 인프라라든지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샐러리캡]] 같은 제도는 [[유럽]]에서도 아직 도입되지 않은 것이라 그 선진성에서 한 수 위에 들어간다. 특히 이 샐러리캡 제도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나온 제도라는 점에서 오히려 프로축구리그들이 자유경쟁시장인 유럽에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총 관중 수 3,587,538명으로 역대 월드컵 통산 1위'''이다. 다음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 프랑스 월드컵]] 대회부터 진출국이 32개국으로 늘어나 경기 수가 12경기 늘어났음에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2위 기록은 3,429,873명을 기록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2014년 브라질 월드컵]]. 미국이 이른바 4대 프로스포츠가 유명해서 축구의 인기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 스포츠 시장의 어머어마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것 또한 웬만한 나라의 인기 스포츠 관중동원 이상 간다는 얘기다. 또한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만 수천만 명이고 축구가 인기 스포츠인 인구 '''1억'''의 [[멕시코]]가 지척에, 그리고 남미가 아래로 이웃해 있다. 더군다나 세계 중심국답게 교통편도 발달해 있고, 특히 많은 수의 항공편이 미국을 향하기에 미국 밖에서 보러 오기도 편하다.] 또한 대부분의 경기장이 6만 이상을 수용하는 미식축구 경기장이었던 것도 많은 관중이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다른 대회에서는 6만 명급 이상 대형 구장은 개막전, 결승전, 4강전 등의 핵심 경기를 소화하는 대회의 메인스타디움으로 쓰이는 규모지만 이 때는 NFL 미식축구 경기장을 축구장으로 전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규 구장 지을 필요 없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한민국의 10개 경기장이 모두 신축인 것과 대조된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제외하고는 월드컵 개최 요건을 충족한 경기장이 하나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대규모 관중동원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작은 구장이 [[워싱턴 D.C.]]의 [[RFK 스타디움]]([[워싱턴 레드스킨스]]/[[텍사스 레인저스|워싱턴 세네터스 II]]/[[워싱턴 내셔널스]]의 전 홈구장)으로 수용인원 53,000명 규모였을 정도였으니 미국 월드컵에서 경기가 개최된 [[NFL]]의 대표적인 경기장으로 [[뉴욕 자이언츠]]/[[뉴욕 제츠]]의 이스트 러더퍼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폰티악 실버돔, [[시카고 베어스]]의 솔저 필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폭스보로 등이 있었다. 이 월드컵이 열린 지 32년 후에 열리는 [[2026 FIFA 월드컵]]에서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신축구장 없이 관중석 증축만으로 해결할 예정이다. 참고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홈구장 폰티악 실버돔은 FIFA 월드컵 사상 최초의 실내구장이었다.[* 피닉스 [[스테이트팜 스타디움]], 휴스턴 [[NRG 스타디움]], 애틀랜타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처럼 지붕개폐식 구장이 아닌 고정형 돔구장이었다. 다만, 월드컵 기간에 한정하여 천연잔디를 깔았다.] 이 대회의 성공 덕에 4대 스포츠인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의 인기에 밀리던 미국에서도 축구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이후 1996년 미국에서 [[메이저 리그 사커]](Major Leagu Soccer, MLS)라는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하는 토대가 되었다.[* 사실 MLS 출범 이전에 [[북미 사커 리그(1968~1984)|북미 사커 리그]](North American Soccer League, NASL)가 1968년부터 1984년까지 존재했었었는데 1970년대에는 [[펠레]], [[에우제비우]], [[조지 베스트]],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요한 크루이프]] 등의 레전드들이 선수 말년에 상업적으로는 괜찮았던 리그였다. 그러나 이후 저조한 인기와 재정난으로 리그가 폐지된다. 반대로 프로야구는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파업 사태]]로 인해 '''그 해 월드시리즈 자체가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전 대회인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가 [[사키이즘|압박축구 전술의 유행]]으로 경기당 평균 득점이 역대 최저[* 52경기 115골로, 경기당 2.21골이었다.]가 된 탓에, 기존 승리팀에 2점을 주던 승점제를 승리팀에 3점을 주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수비수가 백패스한 공을 골키퍼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하였으며,[* 헤딩은 제외, 그리고 발로 패스한 공을 잡을 경우에는 [[프리킥|간접 프리킥]]이 주어진다.] 공인구를 좀 더 공격적으로 바꾸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이 대회에서는 경기당 2.71골을 기록하여 전 대회에 비해서 평균 득점이 크게 늘었다. 또한 기존에 2회까지만 허용되었던 선수 교체도 3회로 늘어났다. 1994년은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폭염]]으로 유독 무더웠던 해이기도 했고 이것이 경기력에 많은 영향을 미친 대회였다. 섭씨 35도에서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인 폭염, 그리고 습도마저 매우 높은 환경 속에서 많은 경기가 치러졌다. 게다가 미식축구 경기장을 전용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대부분 경기장에 햇볕을 막아줄 지붕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여름에도 기후가 비교적 서늘한 중북부 유럽팀 선수들이 평생 처음 겪어보는 땡볕 속에서 적응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디펜딩 챔피언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90년 우승 멤버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평균 연령이 만 32세에 이르던 최고령 팀이었는데, 폭염 속에서 진행된 94 월드컵에서 체력적 문제를 노출하며 후반전엔 거의 걸어다니면서 경기했다.[* 이 때문에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 대한민국-독일 전에서 0:3으로 한국이 지던 것이 2:3까지 따라붙을수 있었다.] 게다가 유럽 중계 등 대회 흥행을 위해 미국 현지 시간으로 대낮[* 유럽 주요 지역과 미국과의 시차는 6~10시간 정도다.]에 경기가 열리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미국 날씨가 구름 한 점 없을 정도로 좋아서 거의 땡볕에서 경기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또한 결승전이 [[승부차기]]로 승부가 결정된 최초의 대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펠레의 저주]]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기념비적인 월드컵이기도 하다. 단순히 팀과 선수의 승패에 영향을 준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사람이 진짜로 총에 맞아 죽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영향이었는지 대한민국에서는 "자살골"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자책골"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물론 영어권 나라에서는 "Own Goal"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16강전의 첫번째 경기와 두번째 경기에서는 경기 시작 전에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선수에 대한 추모가 담긴 묵념을 실시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